1907년 7월 14일 헤이그 특사 이준 사망 <역덕이슈 오늘>

재생 0| 등록 2018.07.16

1907년 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호텔방에서 헤이그 특사 이준이 사망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됩니다. …

1907년 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호텔방에서 헤이그 특사 이준이 사망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됩니다. 자력으로는 망국의 위기를 벗어나기 힘든 상황, 고종은 외세의 도움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3인을 파견합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입니다. 이들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해 회의장으로 향했지만 참석을 거부당합니다. 정식 초청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실 대한제국은 정식 초청국이었습니다. 처음 만국평화회의를 제안한 사람은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였습니다. 당시 한반도에서 일본을 견제하던 러시아는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만국평화회의 공동 주최국인 러시아가 네덜란드에 보낸 초청국 명단에는 분명히 대한제국이 12번째 초청국으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배하자 러시아의 태도가 급변합니다. 러시아는 1907년 일본과 비밀협약을 맺으면서 한국에서의 일본의 우위권을 인정했습니다. 러시아 외무상은 1907년 헤이그에 있던 만국평화회의 의장 넬리도프에게 전보를 보내 한국과 협상하지 말 것을 명했습니다. 러시아가 배신한 것입니다. 최대 규모의 특사단을 헤이그에 파견한 일본은 대한제국 특사의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막기 위해 끈질긴 방해공작을 펼쳤습니다다. 결국 헤이그 특사 3인은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열린 회의장에 약소국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만국평화회의 참석이 좌절되자 이준은 크나큰 분노로 병을 얻습니다. 수일 후인 1907년 7월 14일, 먼 타국 땅 작은 호텔방에서 헤이그 특사 이준은 숨을 거둡니다. 철저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 대한제국의 외교적 노력은 실패했습니다. 21세기 한반도에서는 이런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준 열사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에 있습니다. 헤이그의 공동묘지에 모셨던 시신을 1963년 운구해 안장했습니다.

영상물 등급   모든 연령 시청가
방영일           2018. 07. 16
카테고리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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