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다 <역덕이슈 오늘>

재생 0| 등록 2018.04.13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됩니다.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됩니다.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민족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결정됐습니다. 임시의정원은 임시정부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발표합니다. 임시헌장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을 천명합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새로운 나라는 임금이 통치하는 군주제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민주공화제 국가임을 명확히 밝힌 것입니다. 1919년 9월에는 서울의 한성정부와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민의회,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통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합니다.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정치조직으로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칩니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항일 운동 세력과 연락하기 위한 기구로 교통국을 두고, 지방행정제도인 연통제를 실시합니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독립공채를 발행했고, 독립신문을 발행해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외교활동도 병행합니다.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과 광복군을 창설해 항일 무장투쟁을 벌입니다. 김구가 결성한 한인애국단 소속의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요인을 타격합니다. 1932년 1월 한인애국단 소속의 이봉창은 도쿄에서 일왕이 타고 있는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집니다. 같은 해 4월 윤봉길은 일본군이 상하이에서 일왕의 생일과 상하이 사변의 승리를 축하하는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장성과 고관들을 처단합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고 윤봉길의 의거를 격찬하고,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게 됩니다. 윤봉길의 의거 후 집요해진 일본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임시정부는 중국 대륙을 옮겨 다니며 항일투쟁을 계속합니다. 1940년 충칭에 자리 잡은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합니다.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임시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광복군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시킵니다. 광복군은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서 활약합니다. 1945년에는 미군의 OSS부대와 합동작전으로 국내에 진입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작전이 취소됩니다. 1948년 만들어진 제헌헌법과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이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음을 천명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 <제헌헌법 전문>에서 인용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인용

영상물 등급   모든 연령 시청가
방영일           2018. 04. 13
카테고리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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