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사랑과 영혼 - 400여 년 전 편지로 본 조선 여인의 삶 <역덕이슈 오늘>

재생 0| 등록 2018.05.21

1998년 경북 안동에서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조선시대에 쓰인 한글편지가 발견됐다. 무덤의 주인은 안동에서도 손꼽히는 무반가…

1998년 경북 안동에서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조선시대에 쓰인 한글편지가 발견됐다. 무덤의 주인은 안동에서도 손꼽히는 무반가문의 자제였던 이응태, 편지를 쓴 이는 그의 아내였다. 망자의 가슴에서 발견된 한글편지에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절절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편지 속에서 의외의 단어가 발견됐다. 바로 ‘자네’라는 표현이다. 편지에서 아내는 남편을 ‘자네’라고 14번이나 부르고 있었다. 이 편지가 쓰인 것은 1586년 조선 초기, 편지에 드러난 표현들을 통해 우리는 이응태와 그의 아내가 살던 조선 초기에는 부부가 비교적 대등한 관계로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남녀유별과 남존여비 관습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하는 조선시대, 그러나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남녀가 법적, 제도적, 사회적으로 비교적 평등했다. 호적에도 남녀 구분 없이 출생 순으로 기록이 됐다. 사대부 가문의 재산 분배 내역을 기록한 분재기를 보면 재산을 남녀 차별 없이 균등하게 나눠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와 책임도 동등하게 가졌는데, 남녀 상관없이 모든 자녀들이 제사를 번갈아가며 담당했다. 이응태의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를 통해. 그가 처가살이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혼례 후 남편이 아내의 집에서 사는 남귀여가혼이 보편적이었다. 율곡 이이가 태어나고 자란 강릉 오죽헌 역시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친정이었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조는 중국의 관습을 따라 친영 즉, 결혼 후 여자가 남자의 집에서 시집살이 하는 풍습을 도입하고자 했다. 민간의 혼례 전통이 쉽게 바뀌지 않자, 왕실이 먼저 나서 친영을 시행했다. 남녀의 접촉을 금하는 내외법도 강화했다. 여성들은 자유를 빼앗겼다.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집안에서도 안채에 갇혀 생활하게 된다. 400년 전에 쓰인 편지 한 장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조선 초기의 색다른 사회상과 여인들의 삶! 우리가 지금 전통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관습들은 어쩌면 그저 짧은 한 시대에만 유효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상물 등급   모든 연령 시청가
방영일           2018. 05. 21
카테고리       교양

더보기

당신이 좋아 할 만한 영상

  • TV조선
  • MBN
  • CHANNEL A
  • Jtbc
  • CJ ENM
  • KBS
  • MBC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