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록] 조선 선비의 육아일기 <역덕이슈 오늘>

재생 0| 등록 2018.05.15

육아의 힘겨움을 전쟁이라는 단어에 빗대어 ‘육아전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육아는 어떠했을까요? 조선시대 풍속…

육아의 힘겨움을 전쟁이라는 단어에 빗대어 ‘육아전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육아는 어떠했을까요? 조선시대 풍속화를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입니다. 가부장적이고 엄한 아버지 일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조선시대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장난을 웃으며 지켜보고, 직접 새참을 먹이고, 뱃놀이 구경에 데려가고, 각종 교육을 직접 할 정도로 육아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인 양아록(養兒錄)을 쓴 사람도 남자입니다. 조선시대 문신 이문건은 집안의 독자인 손자를 16세가 될 때까지 직접 양육하며 그 과정을 세세히 기록한 양아록을 남겼습니다. 이문건은 손자 이수봉이 7살이 되자, 조선시대의 양육 풍습대로 사랑채로 데려와 키우고 가르칩니다. 글공부는 물론이고 술 예절과 하인들을 다스리는 법까지 교육합니다. 손자 수봉은 성장하면서 글공부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이문건은 회초리를 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체벌을 하고 나면 늘 손자를 바라보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손자가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는 극진히 간병했고, 무당을 불러 굿까지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손자가 낫기를 기원했습니다. 이문건은 손자의 무병장수와 성공을 위해 위험천만한 일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왕실 자손들의 태를 묻는 경북 성주 선석산 태봉에 손자의 태를 몰래 묻었습니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엔 태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에 자리한 태봉에 몰래 손자의 태를 묻은 것입니다. 어린 손자가 건강하고 영리하게 성장해 가문을 다시 일으켜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때문이었습니다. 이수봉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약합니다. 이문건의 바람대로 손자는 올곧은 선비로 성장한 것입니다. 양아록은 손자가 훌륭한 선비로 자라기를 바라는 조선 선비의 마음이 온전히 기록된 소중한 기록입니다.

영상물 등급   모든 연령 시청가
방영일           2018. 05. 15
카테고리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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