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5월 27일, 계엄군 전남도청 진입, 시민군 사살 <역덕이슈 오늘>

재생 0| 등록 2018.05.30

1980년 5월 27일, 계엄군 전남도청에 진입, 시민군을 사살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다. 1980년 5월 2…

1980년 5월 27일, 계엄군 전남도청에 진입, 시민군을 사살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 도청을 공격합니다. 200명이 넘는 시민군이 계엄군의 총탄에 피를 흘리고 쓰러졌습니다. 1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생존자들은 연행됐습니다. 죽은 사람 가운데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도 있었습니다. 현장을 목격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노먼 쏘프 기자는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시신이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 시신에 대한 기억은 놔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노먼 쏘프, 前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1979년 10월 26일, 유신독재는 종언을 맞습니다. 독재 청산과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 커지는 시국,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킵니다. 신군부 퇴진, 계엄령 해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5월 15일, 10만 여 대학생이 모인 서울역 광장에서 시위대가 자진 해산합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입니다. 군부의 무력진압으로 인한 유혈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신군부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합니다. 군 병력을 이용해 야당 지도자들과 재야인사들을 감금했고 국회도 봉쇄합니다. 대학생 시위를 차단하기 위해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계엄군을 급파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80년 5월 18일 아침이 밝아옵니다. 5월 18일, 전남대에서 민주화 시위를 하던 전남대생들과 계엄군이 충돌합니다. 계엄군들이 학생들을 구타하고 연행했습니다. 시위는 광주 시내로 확산되고, 분노한 시민들도 시위에 합세합니다. 공수부대가 광주 시내에 투입됐고, 이들은 시위대는 물론이고 통행 중이던 일반 시민에게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대규모 유혈사태의 시작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군대의 폭력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모여들고 시민항쟁이 시작됩니다.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 시민에게 발포합니다. 대한민국 군대가 민간인을 공격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 동안 광주는 신군부의 계엄군에게 무참히 짓밟힙니다. 광주 시민의 피를 밟고서 전두환은 대통령이 됩니다. 3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혀 죽을 이유가 없었다. 군은 무력으로 광주시를 점령할 필요가 없었다. 광주 사람들은 평화로운 해결을 원했다. 애당초 광주에서 항쟁이 일어난 이유는 5월 18일부터 시작된 군의 만행 때문이었다.” - 노먼 쏘프, 前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영상물 등급   모든 연령 시청가
방영일           2018. 05. 30
카테고리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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