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훈 신부] 정의구현사제단의 행동하는 양심 <역덕이슈 오늘>

재생 0| 등록 2017.09.26

1974년 9월 23일 300여명의 젊은 신부들이 모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합니다.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양심선…

1974년 9월 23일 300여명의 젊은 신부들이 모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합니다.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양심선언 후 구속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신부들은 지학순 주교 석방과 유신철폐운동에 앞장서기로 결의했습니다. 1974년 9월 26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순교자 찬미 기도회에서 첫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정의구현사제단은 세상에 알려집니다.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헌정 회복, 긴급조치의 무효화, 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 존중, 서민대중을 위한 경제정책 확립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는 구속자 석방과 3.1정신 실현을 위한 신구교 합동미사가 열립니다. 이 미사의 강론을 맡은 이가 김승훈 신부였습니다. 그의 강론은 “언론자유가 없다, 불의한 정권은 바뀌어야 한다, 구속된 학생들을 석방해야 한다”며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강론 후에는 윤보선, 김대중, 문익환, 함석헌, 안병무 등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참여한 구국선언문을 발표합니다. 이른바 3·1민주구국선언입니다. 이후 김승훈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구속과 석방의 반복으로 이어집니다. 1979년에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구속,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으로 구금, 1982년에는 ‘반미성명서 사건’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김승훈 신부의 정의구현사제단 활동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조작 폭로입니다. 1987년 1월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박종철의 죽음에 대해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부검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의 보고서에 의해 물고문 사실이 드러나자, 경찰관 2명이 박종철을 물고문했다고 시인하고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은채 서둘러 시신을 화장해버립니다. 그런데, 그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도미사 중 김승훈 신부가 사건이 은폐 조작되었음을 폭로합니다. 당시 치안본부 5차장이었던 박처원의 주도 아래 모두 5명의 경찰이 가담한 고문치사사건을 단 2명만이 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꾸미고, 그 2명에게 거액의 돈을 줬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대대적인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고, 이는 6월 민주항쟁 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영상물 등급   모든 연령 시청가
방영일           2017. 09. 26
카테고리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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